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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대가 초의선사는 혼자 마시는 고독 속의 끽다(喫茶)를 이속(離俗)이라
하여 최상의 경지로 꼽았다.
차를 마시면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감각적 허위에서 벗어나 밝은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속세를 떠났다는 표현을 하신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예로부터 성현들이 차를 즐겨 마신 까닭은 차가 군자처럼 그 성미에 사악함이
없고 갈증과 피로를 풀어 몸과 마음에 활기를 주기 때문이라 한다.
조상들은 찻잎을 따고 덖어서 마시기까지 일관된 예법인 다도를 만들어 그
법도 안에서 차를 마셨는데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차와 선의 관계를 “다선일미” 혹은 “선다 일여”라고
말한다.
선이 망상과 집착에 물든 자신의 내면을 살펴서 순수한 참모습을 찾는
것이라면 한 잔의 차를 통해서도 잡념을 없애고 심신을 맑게 하여 자신을
통찰할 수 있기 때문에 차와 선이 한 맛이요 하나와 같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조주 스님은 120년 동안 세상에 머물면서 뛰어난 선기(禪氣)로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스님을 찾아와 “도”를 묻는 모든 이들에게 대답 대신 “차 나 한 잔 들고
가시게”라고 권유하여 저 유명한 “조주끽다거”라는 화두를 세상에 남겼다.
마음의 경지가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차별하지 않고 차 한 잔을 권하는
스님의 선풍은 다선일미라는 생활 선으로 만인을 깨우치게 하였던 것이다.
어떤 모임이나 찻집에서 여럿이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면서 큰 소리로 정치 얘기나
남의 얘기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 나는 그들이 차에게 결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차를 대여섯이 마시면 저속하다는 옛 다인의 말씀을 떠올리며 차를 대하는
마음을 되새겨본다.
고독 속에 홀로 마시는 이속의 차도 좋겠지만 가끔씩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차 한잔을 앞에 놓고 눈빛만 보아도 편안하고 향기로운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어설픈 외래어나 어려운 말 보다는 늘상 쓰는 우리 말 중에서 쉽고 고운 말을
주고받으며 소소한 행복을 나누고 싶다.
찻잔도 너무 화려한 것보다는 초라하지 않으면서 수수하고 기품이 있는 것이면
좋겠다.
몇 년 전 고국을 방문했을 때 인연 있는 스님으로부터 한국 최고의 명인이
만들었다는 고급 다구 셋트를 선물로 받았다. 어설프게 알고 있던 다도를 제대로
배워서 우아하고 격조 있게 차를 마셔보겠다고 벼르던 중 생각지도 못한
팬더믹을 만났다.
가까운 사람들과 남편을 모두 잃고 나 자신마저 병마와 싸우면서 그 꿈은
아직도 상자 안에 갇혀있다.
건강을 되찾는 날이 오면 상자 속의 다구를 펼쳐놓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삶의 지혜를 나누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다.
출처 부동산캐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