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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봉사의 삶임정남 2022-02-12
첨부 파일:  
자원 봉사의 삶
 
자원봉사의 삶... 엔돌핀 배달부 임정남
 
(01-2009) ON | 2009-01-05 오후 12:46:14 |
 
작성자: 코리안 저널 | 조회수: 14 [Never Ending Story...]
 
자원봉사의 삶... 엔돌핀 배달부 임정남 작년 토론토한인회관에서
거행된 삼일절 기념식후 열린 한인회 정기 총회에서의 일이다.
만나기만 하면 의제를 놓고 격하게 싸우던 주류와 비주류회원들이
한인회 회비폐지등 정관개정 안건으로 소란스러웠을때다.
예상외로 갑자기 그가 나섰다.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나왔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말문을 연
임정남 이사는 눈물어린 호소를 했다.
"전 이민 온지 31년 되었습니다.
선거 때 마다 회비대납이 공공연히 이뤄져 거의 95%가
대납이었습니다.
이 캐나다 사회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더 이상 부끄러운
민족으로 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 감정에 겨워 그는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논란을 빚던 장내는 일순 조용해졌다.
"옳소"하는 이구동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렇게 만장일치 박수를 통하여 정관개정이 순조롭게 통과된
일은 아직까지도 동포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회자되고 있다.
올해 66세인 임 이사는 한인사회를 위한 궂은일 소위 3D(?)일을
앞장서 소리없이 도맡아 하기로 유명하다.
한인회관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주차정리, 노인회 워커톤 때는
탈춤으로 앞장서 주류사회 매스컴에서도 취재대상이 되기도 했다. -
 “나의 가슴속에는 늘 가득히 채워져 있는것이 있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생각하면 기쁨이 절로 나고
그곳을 향할때는 신바람이 나고 그곳을 바라보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 -
“한인회관과 나”중에서, 임 정 남 누구도 내일처럼 나서지 않을때
한인회관의 주변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회관 입구 장승앞에
마련된 화단에
스스로 Dazzler Orange, Blitz Pink, Janie Primrose 등 500여그루의
화초를 심었다. 이 화초들을 아름답게 꽃피우기 위해 이른 아침 물을
주는 정성은 한인커뮤니티에 대한 그의 사랑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인회관을 찾는 모든이의 마음을 밝게해 주고 싶은 그의 순수한
마음은 주위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뭘,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사진은 왜 찍으려고..." 소탈하고 사심없는
그의 봉사정신은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이시대 귀감이 되고있다.
임정남 이사는 1942년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8세때 6.25를 겪었다
. 담임 선생님이 주신 "하늘의 별이 몇개인가?" 라는 초등학교 숙제를
하기위하여 심야에 밖에 나갔었다고... 동심으로 하늘의 별을 세다가
갑자기 인민군의 대포탄 공격 으로 곁에 있던 고목나무가 맞아
쓰러지던 "우지직" 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래선지 혹 누가 북침이 아닐까? 하는 말은 그옆에선 자제해야 할것이다.
아무리 순수하고 착한 그라도 그런주장엔 흥분할지도 모를일이기
때문이다. 3형제중 막내인 그가 태어나서 1살박이일때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성장했다.
그의 공식 최종학력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있던 일성고등공민학교
졸업이 전부다.
소위 가방끈이 이렇게 짧은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이지만 어떻게
그 수많은 표창을 받게 되었는가? 내력이 평소 궁금했던 본 기자는
개인적으로도 이번 취재를 통하여 개인적인 궁금증도 풀어보는
일석이조의 기회가 되었다.
키가 작다는 핸디캡으로 자신감 결여, 전후 50 -60년대 한국의
가난하고 어려웠던 경제상황, 전방군부대식당 종업원과 청량리역전에서
석탄 부스러기 주워 팔기등 고생하던 편모슬하, 이러한 악조건속에서
가정적으로 불화까지 겹쳐 최악의 상황속에서 사춘기 임정남은 자랐다.
옥수동 고지대 영세민들에게 연탄을 배달하면서 아이들에게 "시커먼
아저씨"로 놀림을 받곤 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무거운 연탄을 손수레에 싣고 힘든
고지대를 오르내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후에는 손수
판자에 못질하여 골목길에 구멍가게를 만들고 콩나물과 아이들에게
달고나를 팔면서도 오히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찾아서 도왔다.
그래서 주민들이 이왕이면 임정남이꺼 팔아주자! 할 정도여서 장사는
잘되었다고 한다.
그는 남을 돕기를 좋아하고 항상 무엇이 나라를 위하는 방법인지 찾아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참으로 모범적인 생활이 몸에 배어있는듯 하다.
그만의 독특한 도를 터득했다고나 할까? 어려운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적이고 밝게 웃는 성격으로 시간을 쪼개어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으로 자연히 주위에 소문이 나서 수많은 표창을 받았다.
1972년 5월 새마을 수기당선(KBS)을 시작으로 그해 7월 청와대
특별초청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자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의 스토리는 주요 방송국들에서 앞다퉈 "절망은 없다","골목대장","
역경에 피는 꽃"등으로 제작되어 연속극, TV 단막극 등으로 제작 방송
되었다.
특히 캐나다로 이민온 이후에도 2002년 MBC TV 에서 그에 대한
스토리를 "포토에세이"로 취재 방영하자 캐나다에서의 그의 봉사의
삶이 모국에도 잘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어렵던 1977년, 캐나다에 사시던
큰형님의 초청으로 어렵사리 인터뷰를 세번만에 통과하여 캐나다로
올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조지브라운 대학에서 이민자를 위한 ESL영어공부를
6개월정도 하고나서 공장에 다니던 부인과 함께 형님댁에서 나와
지하셋방에서 이민자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 디시워셔, 지렁이 잡기등 열심히 일하면서 부지런히 돈을 모아서
영-로렌스 근처에서 오천불로 컨비니언스 가게를 시작했다.
아침 8시에서 밤 10시까지 부부가 교대로 가게를 운영하면서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즐겁게 일했다.
한편으로 체질적으로 습관화(?)된 봉사활동을 이곳서도 멈출 수가
없었던 임이사는 한인회, 실협등에서도 궂은 일을 맡아 묵묵히 봉사하였다
. 무궁화를 이곳에 보급하는데도 앞장섰었고 오래전 일이지만
NDP후원회장 이경복씨와 함께 소수민족 캬라반 행사에서 탈춤으로
흥을 돋웠던 활동이 토론토스타 일요판에 대형 컬러사진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28년간 컨비를 운영하면서 단 하루도 가게문을 닫은적이 없고 한차례
서운한 일이 있어 토라졌던 25일쯤 빼고는 조합을 애용했던 사람이다.
그는 20년 넘도록 매장 직원들과 다퉈본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도매상은 눈길도 주지않고 조합만을 이용하는 의리의 고객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우리조합이 자랑스럽고 고마워서 그랬다"
고 우리 한인조합 예찬론을 편다.
조금 비싸고 불만이 있더라도 애용해 주면서 개선을 유도하자는
긍정적인 생각에서다. 온타리오한인실협인협회(OKBA) 이사 15년,
한인회 이사 18년의 경력만 보더라도 본인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그보다 더 한인사회에 열심히 봉사했던 사람이 있었던가 싶다.
몇년전까지도 캬라반에서 엿장수로 등장하던 임이사는 지금 한국식품
쏜힐점에서 일하고 있다. 세살아래의 부인 임영자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었으며 끔직히 귀여워하는 2살짜리 손자 하나가 있다.
 
쏜힐지역에 거주하는 임정남이사는 이번에 2009 캐나다 불교인회
회장으로도 선출되어 불자들이 서로 화합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한다.
생업과 봉사활동 틈틈이 골프도 즐기며 2000년엔 글로브앤메일
주최 초청골프대회에서 베스트볼 챔피언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현재 무궁화사랑모임 부회장과 시니어 골프협회장도 맡고 있다.
2009 새해를 시작하며 본 기자도 임이사의 솔선수범 봉사하는
모습을 십분의 일이라도 행동으로 닮아보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 66세에도 은퇴하지 않고 아니 은퇴를 영원히 하지 않을것 같은
부지런함과 건강을 보여주고 있는 엔돌핀 배달부 임정남! 주위를
둘러보아 누구에게 행복한 엔돌핀을 배달할것인가 살피는 여유를
가지고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풍족하여 나누어
주는 배려의 삶을 살고 있는 그에 대한 취재를 마치며 그와 마주한
테이블에서 좀처럼 일어나고 싶지않은 자신을 발견한다. 아하, 이게 바로
엔돌핀바이러스구나! 아차,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을 훨씬 넘겨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만나면 헤어지기 싫은 행복배달부 임정남의 직업(?)이 끝없이
계속되기를 기원해 본다. 평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는 주위를
둘러보아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주며 주말에는 한인회관 청소와
꽃밭가꾸기로 봉사활동을 늦추지 않고 있는 그를 다시 찾아가
이번처럼 사무실에서 공식적인 취재말고 인간적인 정겨운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따뜻한 커피한잔을 나누며...
(취재:양경춘 기자) e-mail:[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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