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42 년 9 월 개성에서 태여 났습니다 그리고 9살 때 6 25전쟁을 만나고 1 4 후퇴 때 피란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남으로 이리 저리 떠 돌다가 헤어진 형을 만나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정착 하게 되었습니다
피난살이에 고향에서 배운 글도 잊고 12살에 다시 공부를 시작 했습니다
정식 학교에는 가지 못하고 공민 학교 였읍니다
월반을 2번이나 하고도 18 살에 중학 과정을 마치고 우물파고 집 짓는 노동 판에 다니다 단돈 500원으로 달고나 장사로 시작 구멍 가게로 발전 했읍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저에게 장사란 쉬운 것이 아니 었읍니다
그래서 손님에게 친절함은 물론 동내 골목길을 청소 하고 나아가 집 찾는 분 들을 위하여 동내 안내소 매년 동내 어린이 들을 위한 어린이 잔치 노인들을 위한 노인대접 그리고 잡화점에서 연탄 전문 점으로 변하여 잡화점을 정리
노인들의 휴게소로 만들고 산골 마을에 마을문고 만들기 수재민 돕기와 매년
망우리 공동 묘지의 외로운 영혼을 위한 합동 위령제를 지내 드렸습니다
그러한 봉사를 하는 동안 저는 기쁨과 행복을 느꼈고 보람 또한 이만 저만이
아니 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저의 활동이 언론에 보도 되고 수기현상 모집에 응모하여
최 우수작에 당선 tv 단막극과 라듸오 연속극으로 방송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께서 청와대 단독 초청 격려를 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카나다에 이민간 형으로부터 이민 초청을 받았습니다
학력이나 기술이나 나이나 가족 등 너무나 이민 자격에 미달 이미 2번이나
실격한 상태 에서 저는 그 동안의 활동상을 편지로 보냈습니다
그러자 곧 카나다 대사관에서 인터뷰 통지가 왔고 이민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민관은 서너 가지 물어 보았으나 저는 답변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이민관은 끝으로 물었습니다
,,카나다에 가서 어떻게 살 것입니까?..
저는 자신 있게 대답 했습니다
..카나다에 가서도 한국에서 한 것 같이 훌륭한 시민으로 살아 가겠습니다..
그러자 그는 저의 카나다 이민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 이민관이 저의 진심을 알아 준 것이 너무나 고마 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굳게 다짐 했습니다
..카나다에 가서도 훌륭하게 살겠다고 ..
카나다의 이민 생활
1977 년 1 월 14 일 드디어 카나다에 도착 저와 집사람 그리고 딸과 아들
우리 4식구는 카나다의 이민 생활이 시작 되였습니다 저는 오자 마자 영어학교에 다니기 시작 했고 집사람은 보석 공장에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기 시작 했습니다
6개월의 영어 학교를 마치고 접시 닦기 호텔 청소를 거처 집사람이 지렁이를
잡아 모은 돈 5000 불과 이사람 저 사람 돈을 빌려 허술한 가게를 구입 1978년
11 월 구멍가게를 시작 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도 서툴고 운전 면허도 없고 자금도 어려워 힘 들었으나 자리가
잡히고 꾸준히 발전 28 년을 운영 했습니다
그 동안 가게를 운영 하면서 저는 카나다와의 약속을 잊지 안고 하나 둘 실행해
나갔습니다
어린이 잔치
가게 근처의 공원에서 동네 어린이들을 오여 놓고 음료수와 과자를 준비 하고
또한 상품을 준비 추첨하여 논아 주니 얼마나 아이들이 기뻐들 하는지 나도 기뻤고 가슴이 벅찼습니다
노인잔치
어린이 잔치를 하고 나니 노인잔치도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여 한국 노인회를 찾아 음식을 대접해 드리니
너무 나들 기뻐하셨고 고마워들 하셨습니다
탈춤
탈춤의 탈 자도 모르던 나에게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주 의원 선거 운동을 돕다가 농악대행사에 탈춤 할 사람이 없어 내가 탈을 쓰고
춤을 추었는데 그 장면이 이곳 토론토 스타 일요 톱기사로 1 면에 실리자
저는 금새 탈춤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체육대회 캬라반 행사에서 탈춤을 추게 되었고 노인회 워커톤에는
15년동안 참가 행진 선두에서 탈춤을 추었습니다
거리 행진에서 탈춤으로 한국문화를 알린다는 자부심은 가슴이 터질 듯 했읍니다
엿장수
한인회 이사로 20년 재직 하면서 한인회 행사에 적극참여 하지만 특별한 것은
캬라반 행사 때 한국에서 가지고 온 호박 엿을 가지고 엿장수로 분장 엿을 팔던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한인회 꽃밭
토론토 한인회에 꽃 밭이 있는데 매년 꽃을 사고 흙을 사서 꽃을 심는데 꽃 묘종이 400개 이상 듭니다
이것을 심고 기르는데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보람이란 이루 표현 할 길이 없습니다
무궁화 사랑모임
토론토에서 2003 년 무궁화를 사랑하고 보급하는 단체로 무궁화 사랑모임이
탄생 했습니다
저는 이사로 시작하여 회장도 하고 현재는 총무를 맡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궁화 분양 행사로 무궁화를 사다가 염가로 분양 하고 관공서에는
무료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발전하여 무궁화 동산을 만들기 시작 했습니다
에드워드 가든을 시작으로 크리스티 공원 젬스가든 얼스코트가든 알렉산더가든
토론토 총 영사관 토론토 대학교 국회 의사당 앞 평화사 무궁화단지 토론토 뿐 아니라 여러 지방으로 분양 되기도 하였습니다
무엇 보다 토론토 구역 시 공원 관리국에서 연례 총회 때 무궁화를 심도록 각 공원에 허가해 준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현충일 행사
무궁화 사랑 모임에서는 2011 년 11월부터 카나다 현충일을 맞아 현충일 행사를 하기 시작 했습니다
젬스가든 이 상온 무궁화 동산에서 무궁화 나무에 한국 참전에 회생된 516 명을
기리는 516개의 리본을 달고 카나다와 한국 국기를 수 십장 메 달고 꽃 다발과
희생자 명단을 비치 하고 한인회장 총영사 노인회장 향군 회장 등과 교민이 참석
한 가운데 행사를 진행 합니다
공원을 방문 하는 분들은 이 광경을 보고 감탄들을 하고 어떤 분은 통곡 하기도
하였는데 자기 아버지가 6 25 참전했는데 3년전 에 돌아 가셨답니다
하여간 얼마나 고마워들 하시는지 보는 이마다 땡큐를 연방 합니다
참전 회생 자 제사
6년전 토론토 평화사의 협조를 얻어 매년 저는 백중 때 한국 참전 희생자 516
명에 대한 제사를 지내 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특별히 지방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 때의 감동과 감격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추모동산
2006 년 5 월 토론토 평화사 에 한국 참전 회생 자를 기리는 무궁화 추모 동산이 새워 젔읍니다
카나다 한국 참전 용사를 기리는 516개의 무궁화를 심은 것입니다
이날은 한인회장 총 영사님 노인회 주 의원 등 토론토 교민 150 여명이 참여 하여 큰 성황을 이루어 축제 분위기 였습니다
마무리 글
이제 7 월이 오면 무궁화가 탐스럽고 아름답고 화려하게 필 것입니다
카나다는 골목마다 거리마다 무궁화 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한여름에 꽃나무는 무궁화뿐 이기에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잇습니다
무궁화는 카나다와 한국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무궁화 꽃이 활짝 피고 있습니다
한 카 우정의 꽃이 활짝 피고 있습니다 끝